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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질서에 길들여지기 훨씬 전, 물과 공기, 함께 움직이는 몸들을 통해 전달되는 소리, 바로 진동이 있었다. 《불협하는 합창》은 소리가 물처럼 쉽게 가둘 수 없고 경계를 침식하며, 허락 없이 기억을 운반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2026부산비엔날레는 바다와 인간, 그리고 비인간의 몸들 사이를 오가는 파동과 주파수가 어떻게 서로를 조율하는지, 체화된 소리들이 어떻게 소통과 치유,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들여다본다.
우리는 모호함과 복잡성, 비밀을 간직한,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언어의 잠재력으로 회귀한다. 언어는 문법과 공인된 어법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몸짓과 숨, 리듬, 가까이 놓인 몸들의 떨림 속에 살아 있다. 언어는 살아 있는 힘, 반란과 붕괴의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2026부산비엔날레의 키비주얼은 도시에서 흔히 발견되는 플라이포스팅(flyposting)과 클럽 전단 등 거리의 시각 언어에서 출발한다. 이는 특정한 질서나 체계에 의해 정제된 디자인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의 표현이 겹치고 충돌하며 형성되는 도시의 비제도적 시각 구조에 주목한 접근이다. 전시 주제인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 제안하는 다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나의 메시지를 서로 다른 목소리로 변주하는 방식을 통해 ‘합창’의 시각적 생태로 구현된다.
어두운 배경은 다양한 그래픽 요소들이 발화하는 무대로 설정되며, 그 위에는 총 12가지의 타이포그래피가 반복적으로 배열되고 중첩된다. 파스텔 계열의 컬러 시스템은 어두운 무대 위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며, 서로 다른 요소들의 공존과 긴장을 동시에 드러낸다.
한편, 전시에 대한 정보 표기에는 상대적으로 정제된 서체를 사용하여 자유롭게 변주되는 타이포그래피와 대비를 이루고, 전체 구성 안에서 시각적 균형을 형성한다.
2026부산비엔날레 키비주얼의 핵심은 확장 가능성이다. 디자인 에셋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며, 각자의 맥락에서 재생산된 결과물들은 또 다른 ‘목소리’로 축적된다. 이러한 흐름은 도시 전반으로 확장되며, 2026부산비엔날레의 합창을 구성하는 하나의 층위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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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2026. 7. 10. (금) 9:00 – 7. 24. (금) 23:59
2차: 2026. 8. 14. (금) 9:00 – 8. 28. (금) 23:59
온/오프라인: 2026. 8. 29. (토) – 11. 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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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질서에 길들여지기 훨씬 전, 물과 공기, 함께 움직이는 몸들을 통해 전달되는 소리, 바로 진동이 있었다. 《불협하는 합창》은 소리가 물처럼 쉽게 가둘 수 없고 경계를 침식하며, 허락 없이 기억을 운반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2026부산비엔날레는 바다와 인간, 그리고 비인간의 몸들 사이를 오가는 파동과 주파수가 어떻게 서로를 조율하는지, 체화된 소리들이 어떻게 소통과 치유,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들여다본다.
우리는 모호함과 복잡성, 비밀을 간직한,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언어의 잠재력으로 회귀한다. 언어는 문법과 공인된 어법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몸짓과 숨, 리듬, 가까이 놓인 몸들의 떨림 속에 살아 있다. 언어는 살아 있는 힘, 반란과 붕괴의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오늘날 공적 담론은 나날이 도구화되고 있다. 반복과 도덕적 완곡어법, 알고리즘적 왜곡 속에 공허해진다. 오마르 엘 아카드(Omar El Akkad)는 이 같은 상태를 예리하게 짚어내는데, 제국 치하에서 언어는 실패하지 않고 작동한다. 폭력을 순화하고, 파괴를 용인 가능한 단어로 치환하고, 권력에 편입되기 위해 의미를 소집한다. 이 폐허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와 몸은 대안적인 정치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집단적으로 내는 소리는 자율성이 말뿐만 아니라 존재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상기하며 새로운 긴박성을 띈다.
‘연대하는 몸들’이라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개념에서 정치적 행위력은 우리가 함께 모일 때 발생한다. 시위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대개는 일시적으로 시공간 속에 몸들이 모이는 방식이다. 소리는 이러한 집회의 연결 조직이 되어 서로의 호흡을 동기화하고, 청년문화에서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집단성을 체계화한다. 레이브 문화와 그래피티 문화에서부터 오늘날의 거리시위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이 주도한 운동은 말이 통제되는 곳에서 소리를 사용했고 언어가 고갈된 곳에서 리듬을 사용해왔다. 정치적 가능성은 메아리, 비트, 반복의 형태로 지속된다. 《불협하는 합창》은 해방을 위한 투쟁과 얽혀 있는 음악과 클럽 문화의 유산을 기린다—위협받고 있지만 결코 사라진 적 없고, 이를 탄생시킨 공동체가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보호하는 이 유산을. 우리는 하위주체(subaltern)의 맥락과 숨겨진 비밀스러운 상황들, 밤과 일시적인 자치공간에서 태동한 이야기들을 통해 개인적, 집단적으로 주체가 되는 방법을 모색한다.
부산은 이러한 탐색에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한국의 대표적 항구 도시이자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오랫동안 이동과 피난, 그리고 인내를 통해 형성되었다. 부산의 항구에는 소리의 역사가 담겨 있다. 김영구가 부산의 민중가요 저장소에 보관한 노동요와 저항가요들은 건설, 무역, 어업에 종사하며 한국 경제 발전의 토대를 닦은 이들이 불렀던 노래들이다. 이 가요들과 함께 무가(巫歌)가 리드미컬한 북소리와 계절의 순환,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호명과 응답 속에 울려 퍼진다. 노동요와 마찬가지로 무가 역시 몸들을 동기화하고 에너지를 소환하며, 인간과 영적 세계, 바다를 매개하는 생존의 기술이다. 이 모든 것은 소리가 곧 생존이자 관계임을 보여준다. 부산에 함께 모인다는 것은 소리가 조직하는 힘을 늘 알고 있었던 땅 위에 서는 일이다.
2011년, 노동운동가 김진숙은 반노조적인 사측의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309일 동안 부산항의 35미터 높이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지상에서 수많은 지지자들이 함께하면서 그녀의 고독한 시위는 집단적 저항의 장으로 변모했다. 4.19혁명에서부터 부마항쟁,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촛불집회, 계엄령에 저항하며 케이팝 응원봉으로 빛을 밝힌 2024년의 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는 소리와 집회, 끈질김이 권위주의적 스펙타클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불협하는 합창》에 모인 작가들은 이러한 계보를 잇는다.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무빙 이미지, 조각, 회화,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소리를 재료로, 몸을 아카이브로, 집회를 정치적 형식으로 다룬다. 이러한 실천은 고유한 기술이자, 이야기, 노래, 악보, 라디오 방송, 지도, 함께 쉬고 노래하고 듣고 배우는 공간으로 나타나는 제안이다. 부산에서 이들의 집회는 프레드 모튼(Fred Moten)과 스테파노 하니(Stefano Harney)가 ‘파열(the break)’이라 표현한, 지배적인 구조 안에 있으면서 이에 맞서는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공간, 단순한 중단이 아닌 생산적인 파열과 공명한다.
《불협하는 합창》은 공명의 장이자, 지휘자 없는 합창이며, 몸과 예술적 실천들이 엉킨 채 놓이는 장소이다. 이는 관객에게 언어가 실패한 이후에도 계속 퍼져나가는 자장가, 노동요, 시위 구호, 잠수굿, 사물놀이, 후리소리, 애가, 보호의 주문, 클럽 사운드와 연대의 주파수처럼 공적 서사의 수면 아래 끈질기게 지속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라는 초대다. 《불협하는 합창》은 소리처럼 움직인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돌아와 침묵을 거부하고, 존재를 주장하며,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이어가면서.